이란 전쟁의 여파와 미중 경쟁 중동에서 대규모 이란 전쟁이 발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는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글로벌 안보 전문가들이 진지하게 검토하는 시나리오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가상의 이란 전쟁 이후 중동 지정학이 어떻게 재편될지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 분석은 중동의 미래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들의 에너지 안보와 경제 전략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시나리오 분석은 두 가지 핵심 변수를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미국의 걸프 지역 군사 개입 정도로, 제한적 타격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개입으로 확대될 것인지다. 둘째는 중국의 전쟁 후 이란에 대한 태도로, 수동적인 경제 기회주의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적극적인 전략적 개입으로 나아갈 것인지다. 이 두 축의 조합에 따라 중동의 지정학적 미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네 가지 시나리오의 핵심 내용 첫 번째 시나리오는 미국의 제한적 군사 개입과 중국의 수동적 경제 접근이 결합된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서 미국은 이란의 군사적 역량을 약화시키기 위한 정밀 타격을 가하되, 전면전이나 장기 점령은 피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는 이라크 전쟁의 교훈을 반영한 것으로, 미국 국내 여론과 국제사회의 비판을 최소화하면서도 이란의 핵 시설과 미사일 기지 등 핵심 군사 인프라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다. 동시에 중국은 제재로 약화된 이란과의 경제 관계를 심화하지만, 러시아와의 삼각 동맹 구축이나 군사적 지원 같은 실질적인 동맹 수준의 개입은 자제한다. 이 시나리오의 핵심 전제는 호르무즈 해협의 혼란이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운송의 약 21%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하루 평균 약 2100만 배럴의 원유가 이곳을 통과한다. 만약 이 해협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은 큰 충격 없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란이 해협 봉쇄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지 않는다는 낙관적 가정에 기반한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전쟁이 휴전으로 종결되지만 포괄적인 해결책을 도출하지 못하고, 중국이 이란에 대한 적극적인 전략적 개입을 선택하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서 중국은 이란에 대한 물질적 지원, 정보 공유, 외교적 엄호를 강화하며 중러페르시아 동맹을 심화시킨다. 이는 미국을 중동에 묶어두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자원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동시에 이란의 빠른 회복을 도와 중동 내 반미 세력의 결집을 촉진한다. 이러한 전개는 중국의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전략과도 맞물린다. 중국은 이미 2021년 이란과 25년 기간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한 바 있으며, 이 협정에는 4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전쟁 이후 약화된 이란은 중국의 경제적 지원에 더욱 의존하게 되고, 중국은 페르시아만과 중동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크게 확대할 수 있다. 이는 1970년대 이후 지속되어 온 미국 주도의 중동 질서에 근본적인 도전이 될 것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시나리오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는 상황을 다룬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해협 봉쇄 위협을 했으며, 실제로 2019년에는 영국 선박을 나포하는 등 긴장을 고조시킨 바 있다. 만약 전면전 상황에서 이란이 해협을 무기화한다면, 글로벌 원유 공급망은 급격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해협 봉쇄의 경제적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2019년 이란의 선박 공격 당시에도 원유 가격은 단기간에 배럴당 4~5달러 급등했다. 장기 봉쇄 시에는 원유 가격이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가장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초래할 수 있으며, 글로벌 인플레이션 급등, 공급망 마비, 경기 침체 등 연쇄적인 경제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각국의 대응도 달라진다.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은 대체 경로 확보와 함께 군사적 해결을 시도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중동 지역에 상시적으로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하고 있으며, 바레인에 제5함대 사령부를 두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이란과의 관계를 활용해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려 할 것이며, 이는 미중 간 에너지 안보 경쟁을 더욱 격화시킬 것이다. 미중 패권 경쟁의 새로운 전장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글로벌 영향 애틀랜틱 카운슬의 분석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란 전쟁 시나리오를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미중 패권 경쟁의 맥락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냉전 종식 이후 중동은 미국의 확고한 영향력 아래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중국의 경제력 확대와 함께 이 구도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2016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원유 수입국이 되었으며, 2023년에는 사우디와 이란 간 관계 정상화를 중재하며 외교적 영향력도 과시했다. 미중 경쟁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이란 전쟁 시나리오는 단순히 이란의 핵 개발이나 지역 패권 경쟁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누가 21세기 글로벌 질서의 규칙을 정하고, 누가 핵심 에너지 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통제하며, 누가 동맹국들에게 안보를 제공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과 연결된다. 미국이 이란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면, 이는 중동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미국 주도 질서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킬 것이다. 반대로 중국이 이란을 지원하면서도 글로벌 경제 혼란을 방지하지 못한다면, 중국의 책임 있는 강대국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시나리오들이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제한적 개입으로 시작했다가 점차 확대될 수 있고, 중국의 태도도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따라서 각 시나리오는 고정된 미래가 아니라 동적으로 변화하는 가능성의 스펙트럼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유연한 대응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한국에 던지는 전략적 과제 이러한 시나리오 분석은 한국에 중대한 전략적 과제를 제기한다. 한국은 세계 5위의 원유 수입국이자 2위의 LNG 수입국으로, 에너지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한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원유 수입량은 하루 약 280만 배럴이며, 이 중 약 60%가 중동 지역에서 공급된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 등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이 주요 공급원이다. 만약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한국 경제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원유 공급 차질은 정유 산업뿐 아니라 석유화학, 제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의 원전 가동 중단으로 LNG 수요가 급증하자 아시아 지역 LNG 가격이 급등했던 사례는 에너지 공급 충격의 파급력을 보여준다. 이란 전쟁 시나리오는 이보다 훨씬 큰 규모의 충격이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에너지 안보 전략을 다각화해야 한다. 첫째, 공급원 다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은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산 셰일 오일과 가스, 호주와 카타르산 LNG 수입을 늘리고 있다. 2024년 기준 미국은 한국의 4위 원유 공급국으로 부상했으며, 향후 비중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둘째, 전략비축유 확대다. 한국은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을 충족하는 석유 비축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장기 공급 차질에 대비하려면 비축 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 셋째,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등 대체 에너지원 개발을 가속화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30%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기후변화 대응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한 전략이다. 넷째, 에너지 효율 개선과 수요 관리를 통해 전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에너지 안보 외에도 한국은 복잡한 외교적 선택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은 전통적 안보 동맹국이자 최대 방위 협력 파트너다. 한미동맹은 한반도 안보의 핵심축이며, 미국의 확장억제력은 북한 위협에 대한 결정적 보장책이다. 따라서 중동에서 미국이 군사 작전을 전개할 경우 한국에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으며, 한국은 동맹 관계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실제로 2019년 호르무즈 해협 긴장 고조 당시 미국은 한국에 해협 안전을 위한 다국적 해상 연합 참여를 요청한 바 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독자적인 '호르무즈 해협 파견 부대' 형태로 청해부대 활동 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독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는 균형 외교의 사례였다. 한국 시장의 대응과 전략 동시에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 관계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며, 2024년 기준 한국 전체 수출의 약 25%를 차지한다. 특히 반도체,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에서 중국 시장의 비중이 크다. 따라서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어느 한쪽에 과도하게 경도되지 않는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해야 한다. 중동 지역에서 한국 기업들의 활동도 고려 요소다. 한국 건설업체들은 1970년대 이후 중동 건설 시장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활동해 왔으며, 최근에는 원전, 스마트시티, 신재생에너지 등 첨단 인프라 프로젝트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중동 지역 건설 수주액은 약 200억 달러로 전체 해외 건설 수주의 40%를 차지한다. 지정학적 불안정은 이러한 경제 활동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장기적 전망과 준비 애틀랜틱 카운슬의 시나리오 분석은 확정적 예측이 아니라 가능성의 지도를 제시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화될지가 아니라, 각 시나리오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역사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로 가득하다. 1979년 이란 혁명,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2001년 9·11 테러, 2011년 아랍의 봄 등 중동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들은 대부분 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예측하지 못한다고 해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클수록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각각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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