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삶의 경이로움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스스로의 존재를 깊이 탐구할 기회를 갖고 있을까요? 기술의 발달로 모든 것이 빨라지고 편리해진 이 시대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예기하지 못한 도전과 질문을 던지는 논의가 있습니다. 바로 '의식'에 관한 질문입니다. 의식은 어디서 시작되고 탄생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 인간 존재의 핵심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형성되는 것일까요? 지난 2026년 4월 12일, 에이언(Aeon)에 실린 에이미 프라이홀름(Amy Frykholm)의 에세이 '빵을 쪼개며(In the Breaking of the Bread)'는 이 질문에 놀라운 답변과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녀는 의식과 존재의 경이로움을 현대인이 자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과학과 철학적 사고를 융합해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의 연구를 인용하며, 의식이 뇌에서 시작되기보다 신체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합니다. 인간이 가진 몸의 취약성, 고통, 죽음이라는 필멸성이 오히려 의식 발현의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이론적 논의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흔들림 없는 질문을 던지는 주제입니다. 프라이홀름은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은 단순히 인지과학이나 신경과학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일상의 순간들, 빵을 쪼개고 나누는 것과 같은 소박한 행위 속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과학이 놓치기 쉬운 인간 경험의 전체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체감하는 기술 중심적 사회의 변화는 무시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인공지능(AI) 기술, 스마트 기기의 확산, 그리고 일상에서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일어나며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점차 자유로워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이러한 변화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4시간을 넘어섰으며, 이는 OECD 국가 중 상위권에 속합니다. 특히 20대와 30대의 경우 하루 5시간 이상을 디지털 기기와 함께 보내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러한 기술적 진보가 인간 고유의 의식적 경험, 즉 삶에서 느끼는 실질적 경이로움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프라이홀름은 이를 명상, 공동체적 경험, 그리고 하루하루의 소박한 행위 속에서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녀가 에세이 제목으로 언급한 '빵을 쪼개는 행위'는 바로 이런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한 물리적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 속에 담긴 공동의 의미와 연결성이 바로 존재의 본질을 경험케 한다는 것입니다. 프라이홀름의 분석은 한국 사회에도 적지 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생활을 제공받기 위해 디지털화되고 자동화된 삶 속에서 과연 무엇을 잃어가고 있을까요? 예컨대, 압축적인 발전과 경제 중심 사고를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효율성과 생산을 우선시했지만, 그로 인해 우리가 감각적으로 누리고자 했던 많은 삶의 의미가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평화롭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존재를 깊게 탐구할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공통적으로 목격되는 현상입니다. 실제로 한국갤럽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62%가 "자신을 성찰하거나 깊이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했습니다. 특히 직장인의 경우 이 비율은 74%로 더욱 높았습니다. 이는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빈곤을 경험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서울대 심리학과 김현정 교수는 "한국 사회의 빠른 발전 속도는 외적 성취에는 집중했지만, 내적 성장과 자기 이해의 시간을 충분히 허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뇌를 넘어선 의식의 새로운 가능성 흥미롭게도, 의식은 뇌라는 신체 기관에서만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가설은 많은 최신 연구들에서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신경과학자들은 뇌와 신체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의식 형성의 핵심 요소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신경 세포의 발화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심장 박동 같은 물리적 반응이나 감각적 경험들이 의식적 결정과 인지적 행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폴란의 연구가 제시하는 핵심은, 의식이 단순히 뇌의 산물이 아니라 신체 전체의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취약성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향해 가는 필멸의 존재라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의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우리가 완벽하지 않고 제한적이라는 바로 그 사실이 우리를 더 깊이 사유하게 만들고, 삶의 의미를 탐색하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일찍이 "몸은 세계를 향한 우리의 일반적 매개"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몸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고, 그 경험이 곧 우리의 의식을 구성합니다. 프라이홀름의 에세이는 바로 이러한 철학적 통찰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점점 더 신체적 경험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의식의 풍부함 또한 잃어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기술이 불필요하게 인간의 신체 경험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오히려 이러한 의식의 풍부함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요?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직접적인 신체 경험 없이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간접 경험이 실제 신체를 통한 직접 경험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러한 논의에 대해서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특히 인공지능이나 디지털 기술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인간의 노동과 감각적 자극을 대신함으로써 얻어지는 효율성 증대와 결과적 편리함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수많은 디지털 도구들은 인간의 삶을 보다 자유롭게 만들었고, 개인 간의 물리적 거리감을 좁혔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디지털 기술은 사회적 단절을 막고 인간 연결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MIT 미디어랩의 연구원들은 "기술은 인간의 경험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명상 앱이나 디지털 웰빙 도구들은 오히려 사람들이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돕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명상 앱 '마보'나 '코끼리' 같은 서비스의 사용자가 최근 3년간 200%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의문이 생깁니다. 이 편리함이 과연 삶의 진정한 의미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도, 반대로 인간성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고민이 필요합니다. 프라이홀름이 강조하는 것은 기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사용 속에서도 인간의 근본적 경험과 의식의 경이로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내면의 성찰과 통찰 그녀는 에세이에서 공동체적 경험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빵을 쪼개 나누는 행위는 단순한 음식 섭취가 아니라, 함께함의 의미를 체현하는 의식(ritual)입니다. 한국 문화에서도 이와 유사한 전통이 있습니다. 명절에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차례를 지내는 행위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공동체적 정체성과 연결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이러한 신체적, 감각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더 큰 무언가의 일부임을 느끼고, 그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연세대 철학과 박성현 교수는 "프라이홀름의 논의는 서구적 맥락에서 나왔지만, 한국의 전통적 세계관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 문화는 본래 몸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는 전일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를 받아들이면서 이러한 전통적 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프라이홀름의 에세이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잊고 있던 우리 자신의 전통을 상기시켜줍니다." 결국, 이런 논의를 우리 삶 속에서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라이홀름이 제안한 '소박한 깨달음'의 가능성은 눈앞의 물질적 성취를 넘어선, 우리의 삶을 더욱 깊고 진정성 있게 만들어줄 열쇠로 작용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빵 한 조각, 혹은 늦은 저녁 창밖에 펼쳐진 하늘의 경치를 잠시 바라보는 순간. 이런 소박한 순간들이 다시 한 번 우리의 내면을 흔들고, 의식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더 큰 선물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 신경과학과 철학은 점점 더 의식의 신비를 밝혀가고 있지만, 동시에 그 신비로움이 더욱 깊어지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프라이홀름의 에세이는 바로 이 잊혀진 경이로움을 일깨우는 초대장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빠른 변화와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러한 성찰은 더욱 절실합니다. 우리는 종종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하면서도, "나는 누구인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은 미루어둡니다. 그러나 프라이홀름이 제시하듯, 이러한 질문들이야말로 우리 삶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입니다. 당신은 오늘, 스스로의 존재와 삶을 천천히 들여다볼 여유를 가졌나요? 빵을 쪼개는 소박한 행위 속에서, 혹은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호흡을 느끼는 순간 속에서, 우리는 의식의 경이로움을 다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발견이야말로 기술과 효율성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가장 소중한 인간성의 핵심일 것입니다.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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