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안보 위기의 배경과 현주소 최근 유럽연합(EU)이 직면한 안보 위기 상황은 우리가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화두를 던져줍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이란-이스라엘-미국 간 긴장 고조 등으로 인해 유럽은 기존의 안보 체제에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과연 우리는 외부 강대국에 안보를 의존해도 될까?"라는 질문은 유럽 뿐 아니라 세계 많은 지역에게도 공통된 고민을 던지고 있습니다. 브뤼셀 소재 싱크탱크 브뤼겔(Bruegel)의 엘리나 리바코바는 최근 칼럼 '유럽의 미활용된 무기고(Europe's Untapped Arsenal)'에서 유럽의 안보가 더 이상 외부 강국의 지원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독자적인 군사 역량과 안보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수라고 역설했습니다.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군사적 취약성이었습니다. 2022년 2월 침공 초기, 독일군은 며칠 분량의 탄약만 보유하고 있었으며, 유럽 전체의 방공 시스템은 대규모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냉전 시기의 정치적 유산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서유럽 국가들이 지금까지 나토(NATO)를 중심으로 미국의 군사력에 크게 의존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는 유럽 내 자주적인 군사 체제를 확립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해왔습니다. 실제로 2023년까지 NATO 회원국 중 GDP 대비 2%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하는 국가는 11개국에 불과했으며, 독일은 오랫동안 1.5%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2024년 들어 폴란드(4.1%), 에스토니아(3.4%), 미국(3.4%)이 높은 국방비 지출을 보인 반면, 스페인(1.3%), 벨기에(1.3%) 등은 여전히 목표에 미달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리바코바는 두 가지 핵심 대응책을 제안합니다. 첫째, 저비용으로 광범위한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요격 시스템 개발에 대한 투자 강화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러시아가 운용하는 이란제 샤헤드 드론의 단가는 2만~5만 달러에 불과한 반면, 이를 요격하는 서방제 미사일은 100만 달러가 넘습니다. 이러한 비대칭적 비용 구조는 방어측에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안깁니다. 리바코바는 "유럽은 저렴하고 효과적인 요격 수단을 개발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최근 드론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이를 활용한 비대칭 전쟁의 위험성을 고려할 때 매우 시의적절한 제안입니다. 2023년 우크라이나군은 자체 개발한 FPV(1인칭 시점) 드론으로 러시아 전차 수백 대를 파괴했으며, 단가는 대당 500달러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기술 변화는 전통적인 고가 무기 체계 중심의 방위 산업 구조에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둘째, 유럽 내 공격 능력을 강화해 잠재적 위협에 대한 선제적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방어적 성격을 넘어, 유럽의 지정학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초석이 될 수 있는 접근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차세대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인 FCAS(미래 공중 전투 시스템)와 차세대 주력전차 MGCS(주요 지상 전투 시스템)를 공동 추진하고 있으나, 비용 분담과 기술 주도권을 둘러싼 이견으로 진행 속도가 더딘 상황입니다. 프랑스는 핵 억지력을 포함한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반면, 독일은 NATO 틀 내에서의 협력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어 양국 간 미묘한 긴장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경제적 제약입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이미 GDP 대비 높은 복지 지출과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방위 예산 증액이라는 선택을 고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유럽연합 평균 복지 지출은 GDP의 약 27%를 차지하는 반면, 국방비는 평균 1.7% 수준입니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연금 지출 증가 압박 속에서 국방비 증액에 정치적 저항이 큽니다. 그럼에도 변화의 조짐은 보입니다. 독일은 2022년 올라프 숄츠 총리가 역사적인 '시대 전환(Zeitenwende)' 연설을 통해 1000억 유로 규모의 국방 특별 기금 조성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독일 국방비를 처음으로 NATO 목표인 GDP 2%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폴란드는 2024년 GDP 대비 4.1%를 국방비로 지출하며 NATO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의 투자를 단행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산 K2 전차 180대, K9 자주포 212문, FA-50 경전투기 48대를 도입하는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전략적 자율성과 경제적 도전 리바코바는 단순한 예산 증액이 아니라 기술 혁신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유럽은 미국의 국방 지출 규모를 따라잡을 수 없다. 대신 인공지능, 사이버 전력, 우주 기술 등 새로운 영역에서 효율적인 투자를 통해 비대칭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에스토니아는 인구 130만 명의 소국이지만 사이버 방어 능력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으며, NATO 사이버 방어 협력 센터를 유치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정치적 단합의 문제입니다. 유럽연합 회원국 27개국이 각자의 안보 우선순위를 달리하는 상황에서 과연 유기적인 협력 시스템과 국방 산업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짙습니다.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과 폴란드는 러시아의 직접적 위협을 체감하며 강력한 대러 억지력을 요구하는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지중해와 아프리카의 불안정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헝가리는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 유지를 선호하며 EU의 대러 제재에 반복적으로 이의를 제기해왔습니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가 각각 서로 다른 방향으로 국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EU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됩니다. 2019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NATO를 "뇌사 상태"라고 표현하며 유럽 독자 방위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독일과 동유럽 국가들은 이에 반발했습니다. 이에 대해 리바코바는 "유럽 안보의 미래는 더 많은 협력과 연대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잠재된 무기고를 깨운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무기 생산을 넘어선, 전략적 사고와 실행력을 요구하는 과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제기와 제안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할 경우 미-유럽 관계 악화 가능성을 우려하며, 이는 결국 유럽의 지정학적 위치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2017~2021년) 미국은 유럽의 "무임승차"를 비판하며 주둔 미군 감축을 위협했고, NATO 탈퇴 가능성까지 언급한 바 있습니다. 2024년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이러한 우려는 다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미국이 유럽 안보의 최후 보루로 존재해왔고, 그 관계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입니다. 미국은 유럽에 약 10만 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리바코바는 이러한 반론에 대해 "외부 보호막에만 기대는 것은 오히려 유럽을 국제 무대에서 연약하게 만들 뿐"이라고 지적하며, 미-유럽 관계는 자율성과 종속을 서로 배치되는 요소로만 볼 필요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강력한 유럽은 미국에게도 더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입니다. 실제로 미국 국방부도 유럽의 방위 역량 강화를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2023년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유럽의 강력한 국방 산업 기반은 NATO 전체의 이익"이라고 발언했습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전략적 무게중심을 이동하는 상황에서, 유럽이 자체 방어 능력을 갖추는 것은 오히려 미국의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럽의 도전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국이 처한 안보 현실 또한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 대한민국 역시 안보 측면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해왔지만, 동시에 지역 내 자국 방위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방비는 2024년 기준 약 59조 원으로 GDP 대비 2.8% 수준이며, 이는 NATO 목표를 초과하는 수준입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지속되는 가운데, 고도화된 방공 시스템, 드론 대응책, 그리고 사이버 보안 강화 등에서 유럽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이 배울 수 있는 교훈 특히, 군사 산업의 국산화를 넘어선 국제 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합니다. 한국은 이미 KF-21 보라매 차세대 전투기 개발을 통해 독자적인 방위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2026년 현재 시제기 6대가 제작되어 시험비행을 진행 중이며, 2026년부터 양산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또한 K2 전차, K9 자주포, 천궁 방공 시스템 등 한국산 무기 체계는 2023년 기준 약 170억 달러의 수출 실적을 기록하며 세계 9위 방산 수출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이는 프랑스(45억 달러)의 약 4배 수준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국제 무대를 고려한 전략적 자산 운용과 기술 혁신, 그리고 주변국과의 협력 절차에 있어 개선의 여지가 많습니다.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으며, 한미동맹은 여전히 한국 안보의 핵심 축입니다. 동시에 한국형 3축 체계(Kill Chain, KAMD, KMPR)를 통해 독자적 대응 능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정보·감시·정찰(ISR) 자산과 전략 자산 운용 면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안보 논의는 우리가 얼마나 균형 잡힌 동맹 정책과 자주 국방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일깨웁니다. 특히 드론 전쟁의 교훈은 한국에게 직접적인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2022년 북한 무인기 5대가 남한 영공을 침범했을 때 한국군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으며, 이는 저고도·저속 소형 무인기에 대한 탐지 및 요격 체계의 취약성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한국군은 대드론 체계 구축에 수천억 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레이저 무기와 전자전 장비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럽이 직면한 정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