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왜 중요한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국제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그의 등장 이전부터 변화와 도전에 직면했던 미-유럽 관계가 다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2017년부터 2021년까지의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은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강화 욕구를 간접적으로 자극하며 양측 관계에 구조적 균열을 초래한 적이 있습니다. 과연 유럽은 향후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이는 글로벌 정세에 어떤 파장을 미칠까요? 트럼프 행정부는 당시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일관되게 주장하며 유럽과의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약화시켰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에게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나토는 2014년 웨일스 정상회담에서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GDP의 2% 이상 지출하기로 합의했으나, 2017년 당시 29개 회원국 중 미국을 포함해 단 5개국만이 이 기준을 충족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문제 삼으며 유럽 국가들이 안보를 미국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같은 조치는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유럽 국가들에게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독자적으로 방위 및 외교를 운영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인식하게 했습니다. 2026년 4월 2일자 가디언의 논설 '미국과 유럽에 대한 가디언의 시각: 영국은 다리가 되려 했지만, 트럼프는 다리를 불태우려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에 대한 경멸과 모욕이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유럽 연합과의 관계 재정립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에 따라 EU는 유럽 안보 및 방위 정책 강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2017년 12월 출범한 영구구조화협력(PESCO, Permanent Structured Cooperation)은 회원국들의 방위 협력을 제도화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2021년에는 유럽연합 이사회가 '전략적 나침반(Strategic Compass)' 작업을 본격화하며 글로벌 무대에서 보다 독립적인 역할을 모색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이런 독립적 기조에는 여전히 장벽이 존재합니다.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 내 군사 역량 강화 움직임이 실질적 성과보다는 구호에 가깝다는 회의적 시각을 보여왔습니다. 실제로 나토를 제외한 유럽 단일 군사력 구축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2020년 기준 EU 27개 회원국의 합산 국방비는 약 2,000억 유로로 미국 국방비(약 7,380억 달러)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이 예산이 27개국에 분산되어 있어 통합 운용 효율성은 현저히 낮은 실정입니다. 또한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자유주의 성향 매체들은 유럽이 중국, 러시아와 같은 전통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여전히 미국과의 협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2022년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서도 미국의 방대한 군사적·재정적 지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2022년 2월부터 2024년 말까지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약 750억 달러 규모의 안보 지원을 제공했으며, 이는 EU 회원국들의 총 지원액(약 650억 유로)을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이는 당장 완전한 전략적 자율성을 구현하기 어려운 유럽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중재자 역할과 그 한계 특히 영국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브렉시트를 이끈 영국은 스스로를 미국과 유럽 간 '다리'로 표현해왔습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은 EU를 떠났지만 유럽 안보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영국은 나토의 핵심 회원국이자 유럽에서 프랑스와 함께 핵무기를 보유한 유일한 국가입니다. 또한 영국의 국방비는 GDP 대비 2.3%(2023년 기준)로 나토 기준을 상회하며, 유럽 국가 중 최대 규모입니다. 그러나 가디언의 분석처럼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중재 노력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일방주의 앞에서 제약을 받았습니다. 영국은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유럽 안보에 기여하려는 이중 전략을 펼쳤으나,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이러한 중재자 역할은 양측 모두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와 달리 독일과 프랑스는 영국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EU 내에서 합의를 주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2019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제안한 '유럽 개입 이니셔티브(European Intervention Initiative)'는 프랑스, 독일, 영국 등 10개국이 참여하는 다국적 군사협력체로 발전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 이러한 미-유럽 관계의 동향은 단순한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선 경제적 관점에서, 한국과 EU는 2011년 7월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하여 안정적인 교역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한-EU FTA 발효 이후 양측 교역량은 크게 증가했습니다. 2010년 교역액 약 900억 달러에서 2023년에는 약 1,350억 달러로 50% 이상 증가했습니다. EU는 한국의 3대 교역 파트너이자 최대 외국인직접투자(FDI) 원천지 중 하나입니다. 만약 유럽이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대외 정책을 확대한다면 이는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더욱 확대할 수도 있습니다. 또 안보적인 측면에서 나토와 같은 서방 안보 구조에 대한 변화가 동북아시아의 미국 중심 동맹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한미동맹 및 한일 관계에 간접적인 파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으로 분석됩니다. 특히 미국이 유럽에서 방위비 분담을 강하게 요구했던 것처럼, 동북아시아 동맹국들에게도 유사한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당시 약 10억 달러 수준이던 한국의 분담금을 50억 달러 이상으로 대폭 인상할 것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한편, 한국도 유럽과 유사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던 시기를 지나, 최근 국제사회에서 명확한 입장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미국의 요청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의 사례는 한국에 많은 교훈을 제공합니다. 전략적 자율성을 모색하면서도 주요 동맹국과의 협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유럽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국방비는 GDP 대비 약 2.8%(2024년 기준)로 나토 기준을 상회하지만, 북한의 핵 위협과 중국의 부상이라는 독특한 안보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한국에 미칠 수 있는 간접적 영향 그렇다면 향후 전망은 어떻게 될까요?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미-유럽 간 긴장은 재차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령, 그의 거침없는 성향은 방위비 문제와 글로벌 안보 책임 분담 논의에서 다시 한번 열띤 논쟁을 촉발할 것입니다. 트럼프는 재임 시절 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유럽 동맹국들을 압박했으며, 2024년 대선 캠페인에서도 유사한 발언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유럽 국가들은 그런 상황에서 공동 방위를 위한 자율성을 혁신적으로 강화할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유럽 주요국들의 국방비 지출은 증가 추세입니다. 독일은 2022년 2월 숄츠 총리가 '시대 전환(Zeitenwende)' 선언을 하며 1,000억 유로 규모의 특별 국방기금 조성을 발표했고, 국방비를 GDP 대비 2%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폴란드는 2023년 국방비를 GDP 대비 3.9%까지 증액하며 나토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프랑스는 2024-2030년 군사계획법(Loi de programmation militaire)을 통해 국방비를 연평균 3억 유로씩 증액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국제 정치에서 자율성과 협력은 항상 상충하는 목표로 존재해왔습니다. 유럽이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한다 해도 미국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보다 대등한 파트너십을 통해 대서양 동맹을 재정의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유럽뿐 아니라 동북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가 직면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견국들은 어느 한쪽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는 다변화된 외교·안보 전략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결국, 미-유럽 관계 재편의 윤곽은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재집권 여부에만 국한되지 않고 현대 국제 정치의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는 흐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냉전 종식 이후 단극체제를 유지해온 미국의 상대적 영향력 감소,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수정주의적 행보, 기후변화와 팬데믹 같은 새로운 안보 위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국제 질서 재편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단순히 '뉴스'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한국도 글로벌 정책 조율과 주체적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제는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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