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전 세계를 흔들다 포퓰리즘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국제 정치 기조와 경제 구조, 그리고 협력 체계에 상당한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라는 슬로건 아래 포퓰리즘 지도자들은 국민 감정을 자극하며 글로벌 협력과 다자주의를 약화시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이자 예일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케이건은 파이낸셜 타임즈 기고문(2026년 4월 22일)에서 "포퓰리즘의 득세는 단지 국내 정치에 그치지 않고 세계 질서를 흔드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글에서는 케이건의 통찰을 중심으로 포퓰리즘의 부상과 그로 인해 약화되는 국제 질서의 역학, 그리고 한국 사회와 외교 정책에 미치는 의미를 면밀히 살펴볼 것이다. 포퓰리즘은 개인의 불만과 집단의 두려움을 정치적 동력으로 전환하며, 대중의 분열을 심화시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자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분담금 문제를 제기하고 동맹국들에게 국방비 증액을 압박했으며, 결과적으로 동맹국과의 신뢰를 약화시켰다. 트럼프는 재임 기간 동안 NATO를 "구식(obsolete)"이라고 비판하며 미국의 방위 공약에 의문을 제기했고, 이는 유럽 동맹국들 사이에서 미국의 안보 우산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 이러한 정책들은 단기적으로는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논의의 장을 축소시키고 국제 협력의 기초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 케이건은 기고문에서 "전통적으로 미국이 주도했던 국제 협력의 구심점이 무너질 경우, 권위주의 국가들이 그 공백을 채우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서구의 약화된 리더십을 틈타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포퓰리즘의 확산은 기후 변화, 팬데믹, 핵 확산과 같은 글로벌 이슈 해결에 직접적인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케이건 교수는 기고문에서 이러한 초국가적 위협들이 "본질적으로 국경을 넘어서는 문제이며, 단일 국가의 행동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미국이 2017년 파리기후변화협약(Paris Agreement)에서 탈퇴를 선언했을 당시, 협약 참가국들은 대규모 탄소 배출 저감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난항을 겪었다. 세계 2위 탄소 배출국인 미국의 공백은 글로벌 기후 행동의 동력을 크게 약화시켰으며, 비록 2021년 재가입했지만 국제 사회의 신뢰는 회복되지 않았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는 백신 및 의료 자원의 분배를 두고 각국이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며, 다자주의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백신 민족주의(vaccine nationalism)'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선진국들은 자국민 우선 접종에 몰두했고, 이는 개발도상국의 접종률을 현저히 낮추는 결과를 초래했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중반 기준, 저소득 국가의 백신 접종률은 2% 미만에 머물렀던 반면, 고소득 국가는 50%를 상회했다.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의 국제정치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불평등한 백신 분배가 팬데믹을 장기화시키고 변이 바이러스 출현의 온상이 되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약화되는 다자주의와 글로벌 협력 역사적으로도 포퓰리즘과 고립주의는 국가 안보와 번영에 장기적인 부정적 영향을 미친 사례가 많다. 케이건 교수는 기고문에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등장했던 고립주의 물결을 언급하며, 이것이 국제 협력의 부재를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국제적 긴장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1920년대 미국 의회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가입을 거부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윌슨 대통령이 제안했던 국제연맹은 미국의 참여 없이 출범했고, 이는 국제기구의 실효성을 크게 약화시켰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각국이 보호무역 장벽을 높이며 경제 블록화를 추진한 것 역시 세계 경제를 더욱 침체시키고 국제적 갈등을 심화시켰다. 냉전기 이후 구축된 다자주의적 협력과 규범은 이러한 고립주의와 보호주의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의 브레턴우즈 체제는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높이고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그러나 최근의 포퓨리즘 열풍은 그 당시 구축된 안보와 경제 협력 체제를 뒤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일깨운다. 케이건은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을 맞춘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하며, 현재의 포퓰리즘 물결이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위험을 경고한다. 한국의 경우, 다자주의적 협력 체계의 약화는 직간접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수출 중심 경제 구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GDP 대비 수출 비중이 40%를 상회하는 전형적인 개방 경제 국가다. 한미FTA, 한-EU FTA,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등 다자 협정을 통해 국제 무역의 안정성을 확보해왔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상위 5대 수출국(중국, 미국, 베트남, 일본, 홍콩)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 그러나 포퓰리즘 열풍으로 인해 주요 경제 국가들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한다면, 한국의 주요 수출 시장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나 CHIPS법과 같은 자국 산업 우대 정책은 한국 기업들의 해외 투자와 수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안보 측면에서도 다자 협력의 약화는 큰 도전 과제를 안긴다. 북한 문제 해결 과정에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각국이 내향적이고 자국 이익 중심의 태도를 고수할 경우, 협상의 복잡성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의 교착 상태는 다자적 접근의 부재가 얼마나 외교적 진전을 어렵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국제 질서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확대하는 것도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케이건 교수는 기고문에서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내부 분열과 포퓰리즘의 부상은 권위주의 국가들에게 전략적 기회를 제공한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일대일로(BRI) 이니셔티브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쳐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에너지 자원을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하며 구소련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하려 한다. 포퓰리즘의 부상으로 서구 국가들의 협력 체계가 약화되면, 권위주의 체제를 선호하거나 두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신흥국들이 늘어날 수 있다. 이는 한국처럼 민주주의를 주요 정치 체제로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들에 큰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가치 외교와 실리 외교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 한국의 딜레마는 국제 질서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의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약 65%가 미-중 갈등 상황에서 한국이 "균형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고 응답했지만, 실제 정책 선택지는 점점 더 제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외교가 직면한 도전과 과제 그러나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포퓰리즘이 전통적인 정치적 안정성을 흔들었지만, 기존 정치 엘리트들이 외면했던 국가 내 불평등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일부 긍정적인 역할도 했다고 평가한다. 케이건 역시 기고문에서 "포퓰리즘의 부상은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한 결과"라고 인정한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확산된 경제적 양극화가 미국과 유럽에서 포퓰리즘 정치인의 득세를 촉진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미국의 경우 상위 1% 소득 계층이 전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 약 10%에서 2020년 20%로 두 배 증가했으며, 중산층의 실질소득은 정체되었다. 유럽에서도 긴축 재정 정책으로 인한 청년 실업률 급증(그리스 50%, 스페인 40% 상회)이 반EU 정서와 포퓰리즘 정당의 약진을 불러왔다. 따라서, 국제 사회는 포퓰리즘의 부작용을 경계하는 동시에 그 기반이 된 불평등과 소외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할 것이다. 케이건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내부의 경제적 정의와 사회적 통합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포퓰리즘의 위협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결론적으로, 포퓰리즘의 부상은 단순히 개별 국경 내 문제를 넘어 세계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글로벌 협력 체계의 균열은 한국과 같은 중견 국가들에게도 큰 도전 과제를 안긴다. 그러나 동시에 이 같은 변화는 새로운 외교 전략과 리더십을 모색할 기회로도 작용할 수 있다. 케이건 교수는 기고문의 결론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이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고, 다자주의 제도를 개혁하며, 내부의 분열을 치유하는 것이 포퓰리즘에 대응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제시한다. 한국은 다자 협력 체계의 복원을 위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내부적으로는 경제적 양극화와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중견국 외교를 강화하여 MIKTA(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 같은 중견국 협의체를 활성화하고, 기후변화, 디지털 전환, 보건 안보 등 글로벌 어젠다에서 선도적 역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청년 일자리, 주거 안정, 소득 불평등 해소 등 포퓰리즘의 토양이 되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외교 정책은 변화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더 큰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건의 경고처럼, 포퓰리즘 시대의 국제 질서 위기는 위협인 동시에 민주주의 국가들이 스스로를 쇄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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