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파더링’이 암호화폐 규제의 허점? 유럽연합(EU)의 암호화폐 시장 규제법인 MiCA(Markets in Crypto-Assets Regulation)는 글로벌 최초의 통일된 암호화폐 규제 프레임워크로 주목받았습니다. 새로운 디지털 금융 질서를 도모하고 변덕스러운 암호화폐 시장에 안정성을 부여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야심 찬 목표가 시행과 함께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히며 그 효과에 대해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연 MiCA는 암호화폐 규제 분야에서 신뢰를 얻고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요? 현재 MiCA는 그 발효 과정에서 시행 지연과 '그랜드파더링(grandfathering)' 조항으로 인해 초기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23년 6월 발효된 MiCA는 스테이블코인 규정의 적용을 2024년 6월 30일, 일반적인 암호화폐 자산 서비스 제공업자를 대상으로 한 규정을 2024년 12월 30일로 미루었습니다. 그러나 규제 전환 과도기에 해당하는 18개월의 '그랜드파더링' 기간은 실질적으로 EU 전역에서 규제가 전면 적용되는 시점을 2026년 7월 1일까지 지연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비용을 절감하려는 기업들이 느슨한 관할권을 찾아 떠나는 '규제 차익 거래(regulatory arbitrage)'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EU의 정밀한 규제 환경을 악용하려는 이러한 기업들의 움직임은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우려를 낳습니다. 규제 차익 거래는 말 그대로 규제 수준이 낮은 국가나 지역에서 사업을 운영하면서 규제 비용을 줄이고, 이를 통해 더 큰 수익을 추구하는 행태를 의미합니다. EU 내에서도 규제의 엄격성과 집행 강도가 나라별로 다소 차이가 있어 MiCA 도입 전이나 과도기적 시점에서 이를 이용하려는 기업들의 시도가 관찰되고 있습니다. 유럽 은행 감독청(EBA)은 이런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특정 암호화폐 자산 서비스 제공자가 미흡한 AML/CFT(자금세탁방지/테러자금조달방지) 요건을 갖춘 '느슨한 관할권'에서 라이선스를 신청하여 비용 절감과 규제 우위를 선점한 사례를 지적하며 이에 대한 문제를 경고했습니다. EBA는 보고서에서 MiCA 신청이 심각한 AML/CFT 결함으로 인해 거부된 한 암호화폐 자산 제공업체의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며 이러한 위험성을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암호화폐 기업이 EU의 엄격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 엄격한 지역에서 라이선스를 획득하거나, 이를 이용해 의무를 회피한다고 할 때 이들은 이미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많은 자원을 투입한 경쟁사보다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 규제 구조의 신뢰도를 위협하고 더 나아가 시장에서 불필요한 경쟁 불균형을 야기합니다. 승인받지 않은 기업들이 낮은 비용으로 운영하며 규제를 준수하는 기업보다 경쟁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MiCA가 지향하던 시장 통합과 안정성이라는 목표는 당분간 달성이 어려워 보입니다. 규제 차익 거래가 기업 경쟁력 좌우하는 현실 그뿐만 아니라 규제 공백은 자칫 소비자를 보호하지 못할 위험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MiCA는 암호화폐 소비자들이 안정적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려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규제 차익 거래가 장기화된다면, 소비자들은 규제 공백에서 위험한 서비스를 접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플랫폼에서 거래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금융 업계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자화폐 토큰(EMT) 관련 규제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가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2026년 3월 2일, 결제 서비스로 취급되는 특정 토큰을 처리하는 임시 허용 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EBA는 국가 규제 당국에 새로운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EBA는 이 임시 허용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전자화폐 토큰 서비스를 계속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을 명시했으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은 서비스 제공을 중단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이 지침은 MiCA의 전면 시행을 앞두고 전자화폐 토큰을 다루는 암호화폐 기업들에게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러한 규제 정비 노력은 지난해 6월 EBA가 발표한 'No-Action Letter(노 액션 레터)'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2025년 6월 EBA는 PSD2(개정 결제 서비스 지침)와 MiCA가 전자화폐 토큰을 처리하는 암호화폐 기업에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명확히 하기 위해 이 서한을 발표했습니다. 이 서한은 PSD2에 따른 두 번째 승인 필요성을 연기하고 간소화된 승인 절차를 제안했지만, 결과적으로 100개 이상의 암호화폐 자산 서비스 제공업체(CASP)들이 국가 규제 기관에 비공식적으로 또는 정식으로 승인 신청을 제출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규제의 복잡성과 함께 많은 기업들이 규제 준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과도기적 혼란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합니다. 암호화폐 산업의 특성 때문에 MiCA와 같은 포괄적인 규제 프레임워크는 어느 정도의 시행 기간과 유예 조치를 필요로 한다는 주장입니다. 기술적으로나 법적으로 새로운 개념이 많기 때문에 국가별 적응 기간과 단계적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EBA의 노력 또한 일부 긍정적인 신호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초 임시 허용 기간 종료와 함께 전자화폐 토큰을 다루는 새로운 가이드를 제시하며 규제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보인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또한 100개 이상의 기업이 승인 신청을 제출했다는 사실은 업계가 규제 준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MiCA 이후 한국 금융 당국이 배워야 할 점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과도기적 시기에 발생할 수 있는 기업들의 악용 가능성을 보다 정밀하게 감시하고, 규제를 시행하는 각 회원국 간 절대적인 통일성을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MiCA는 단순히 이상적인 법적 틀에 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구나 암호화폐 산업은 변화가 빠르고 다양한 기술적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규제 당국의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적극적인 협력 또한 필수적입니다. 특히 PSD2와 MiCA의 상호작용처럼 기존 금융 규제와의 조화로운 통합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 역시 이 같은 MiCA의 시행 과정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국내에서도 디지털 자산(암호화폐)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며 이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회에 제출된 다수의 디지털자산 관련 법안들은 아직 조율 중이며, 규제의 일원화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MiCA가 시행 초기에는 여러 문제를 드러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을 교훈들은 한국 금융 당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18개월의 그랜드파더링 기간이 오히려 규제 차익 거래의 여지를 제공한 점, 100개 이상의 기업이 승인 신청을 하면서 발생한 행정적 부담, 그리고 기존 결제 서비스 규제(PSD2)와의 조화 문제 등은 한국이 유사한 규제를 도입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 결국 MiCA는 암호화폐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명확한 규칙을 제공하기 위해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규제를 악용하려는 시도와 시행 기간의 허점은 이 제도의 신뢰도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2026년 7월 1일 전면 시행을 앞두고 EU가 이러한 문제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가 MiCA의 성공을 가늠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유럽 연합이 MiCA를 통해 암호화폐 시장의 표준을 제시할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규제 실패 사례로 남게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 독자들에게도 이는 단순히 유럽의 이야기가 아닌, 디지털 금융 시대에 우리가 직면할 도전과 교훈으로 연결될 수 있는 주제입니다. 규제가 변화의 중심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과도기적 조치가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MiCA의 사례는 한국의 디지털 자산 규제 논의에도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입니다. 규제가 변화의 중심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입니다.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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