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DC, 금융 안정성을 논하다 통장 없는 시대에 살게 될 날이 올까요? 카드,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간편 결제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지만, 현금이라는 물리적 화폐는 그 존재감이 점점 흐려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현금 사용 비중은 전체 결제의 18.7%로, 10년 전인 2014년 39.2%에서 절반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와 맞물려 전 세계적으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가 뜨거운 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디지털 화폐가 단순히 결제 형태의 변화에 그치는 것일지, 혹은 금융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CBDC는 국가의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화폐로, 금융 안정성 확보와 효율적인 통화 정책 운영을 목적으로 합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의 94%가 CBDC를 연구하고 있으며, 그 중 24개국이 이미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하지만 이 기술적 진전은 장밋빛 전망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Financial Times를 비롯한 주요 매체는 CBDC가 국가 통화 시스템의 진화라고 평가하지만, The Economist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통제 문제와 시장 자율성 훼손에 대한 우려를 던지고 있습니다. 한국이 이 같은 논의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며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분석의 틀을 제공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입니다. Financial Times의 수석 경제 논설위원 Martin Wolf는 최근 오피니언 칼럼에서 CBDC가 현금 사용 감소와 민간 암호화폐 시장의 불안정성을 완화하는 데 강력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암호화폐는 그 사용의 편리성과 혁신성에도 불구하고 극도의 가격 변동성과 체계적 감독 부족이라는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실제로 비트코인의 경우 2025년 한 해 동안만 가격 변동폭이 68%에 달했으며, 테라-루나 사태(2022년)와 FTX 파산(2022년) 등은 민간 암호화폐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반면, CBDC는 국가가 직접 발행하고 통제하기 때문에 통화 정책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Wolf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는 민간 암호화폐가 가진 혁신성을 흡수하면서도 국가의 통화 주권과 금융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를 활용하여 중앙은행은 금융 위기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지급결제 시스템을 조정하거나 자금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질 수 있습니다. 특히 Wolf가 주목하는 지급결제 효율성은 단순한 기술의 편리함을 넘어 경제 생태계 전체에 걸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25년 연구에 따르면 CBDC 도입 시 국경 간 송금 비용을 현재 평균 6.8%에서 1% 이하로 낮출 수 있으며, 거래 처리 시간도 2-3일에서 수 분 이내로 단축 가능합니다. 또한 금융 서비스 접근이 어려운 저소득층과 농어촌 지역 주민들에게 은행 계좌 없이도 디지털 화폐를 통해 금융 포용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장점입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14억 명이 아직도 은행 계좌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으며, CBDC는 이들에게 금융 접근성을 확대할 수 있는 수단이 됩니다. 그러나 CBDC가 가진 명암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The Economist는 CBDC를 자유 시장 경제의 원리를 바꿀 위험 요소로 지적하며 경고를 던집니다. 이 매체의 분석에 따르면 CBDC는 중앙은행이 개인들의 거래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추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며, 이러한 방식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국가 과잉 통제의 소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e-CNY)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2023년 기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거래액은 2,500억 위안(약 50조 원)을 넘어섰으나, 인권 단체들은 중국 정부가 이를 통해 시민들의 소비 패턴과 자금 흐름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The Economist는 "CBDC가 제공하는 편리함의 이면에는 국가가 모든 금융 거래를 추적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전례 없는 권한이 숨어 있다"고 경고합니다. 자유 시장과 혁신의 딜레마 사용자가 디지털 화폐를 이용할수록 상업은행의 예금 기반이 약화될 가능성도 심각한 우려 사항입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시뮬레이션 연구에 따르면 CBDC가 전면 도입될 경우 상업은행 예금의 최대 30%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로 이동할 수 있으며, 이는 은행들의 대출 여력을 크게 제한하여 기업 자금 조달과 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금융 위기 상황에서 예금자들이 안전한 CBDC로 대규모 자금을 이동시키는 '디지털 뱅크런' 현상이 발생할 경우 금융 시스템 전체가 불안정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것은 금융 혁신을 촉진하기보다 오히려 기존 시스템의 경쟁력을 감소시키고 시장 구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The Economist는 "중앙은행이 직접 소매 금융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민간 은행과의 직접 경쟁을 의미하며, 이는 시장 경제의 기본 원칙에 배치된다"고 비판합니다. 한국은 CBDC 논의에서 어느 쪽 견해에 기울어야 할까요? 한국 역시 디지털 경제 전환 속도를 고려하면 CBDC의 도입이 시급한 논제임이 틀림없습니다. 특히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와 스마트폰 보급률을 자랑합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5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5.3%로 세계 1위이며,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역시 98.8%에 달합니다. 또한 한국의 디지털 결제 비중은 2025년 기준 전체 결제의 81.3%로, 이는 중국(83.2%) 다음으로 높은 수치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CBDC가 현실화된다면 매우 빠른 사회적 수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2021년부터 CBDC 모의실험을 진행해왔으며, 2023년 1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술적 구현 가능성은 확인했으나 실제 발행 여부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금융위원회 역시 2024년 6월 '디지털 금융 혁신 로드맵'을 통해 CBDC의 단계적 검토 방침을 제시했으나, 구체적인 도입 시기나 방식에 대해서는 결정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2025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금융 전문가의 58%가 "2030년 이전 CBDC 도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나, 동시에 73%가 "프라이버시 보호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한국은 급진적인 도입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CBDC의 도입은 단순히 외형적인 기술 적용이 아니라 통화 정책의 방향성과 국가 금융 주권의 핵심이 걸린 문제입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김모 교수는 "CBDC가 금융 시스템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지만,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명확한 법적 장치와 기술적 보안 정책 없이 도입하는 것은 국민의 금융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5년 보고서 역시 "CBDC 도입 시 거래 데이터의 수집 범위, 보관 기간, 활용 목적을 명확히 규정하고, 독립적인 감독 기구를 통한 통제 장치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합니다. 한국 경제는 이미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민간 기업의 혁신으로 상당한 경쟁력을 구축한 상황입니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토스 등 국내 핀테크 기업들은 2025년 기준 연간 거래액 1,200조 원을 넘어서며 아시아 최대 규모의 디지털 결제 생태계를 형성했습니다. CBDC로 인해 지나치게 중앙집중화된 금융 시스템으로 전환된다면 이러한 민간의 창의적 혁신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는 2024년 발표한 의견서에서 "CBDC 도입 시 민간 결제 시스템과의 공존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핀테크 산업 전반의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 이와 더불어, 정부와 민간 기업이 어떻게 협력하고 균형을 맞출 것인가도 중요한 고려 사항입니다. 현재 한국은 민간 핀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는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결제 시장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의 2025년 통계에 따르면 제1금융권(은행)의 디지털 결제 점유율은 42%에 불과하며, 제2금융권(카드사, 저축은행 등) 28%, 핀테크 기업 30%로 다변화되어 있습니다. CBDC가 제도화된다면 제1금융권뿐 아니라 제2, 제3금융권과 핀테크 기업들에게도 미칠 구조적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야만 합니다. 특히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등 서민 금융 기관들의 예금 기반이 흔들릴 경우 취약 계층의 금융 접근성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CBDC는 결국 비용과 편익이 공존하는 선택지입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Hyun Song Shin은 2025년 보고서에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우리의 통화 시스템을 강화할 도구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설계의 타당성과 기술적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금융 시스템 전체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실제로 바하마가 2020년 세계 최초로 도입한 CBDC '샌드 달러'는 2025년 기준 유통량이 전체 통화의 0.5%에 불과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나이지리아의 'e-Naira' 역시 도입 2년 만에 사용률 1% 미만으로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이 해야 할 질문은 명확합니다. CBDC는 디지털 시대에서 국민을 위한 새로운 경제의 잠재적 기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과도한 중앙 통제가 낳을 새로운 도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클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실현 가능성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 법적 제도, 민간과의 협력 모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2025년 보고서에서 "CBDC 도입의 성공은 기술이 아니라 거버넌스에 달려 있다"며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다. 문제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입니다. 자유 시장과 안정성, 통제와 혁신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시점에서 CBDC가 과연 한국 경제에서 새 시대의 포문을 열 것인지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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