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서: 이분법의 한계 불의를 논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선악의 이분법은 종종 심플합니다.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목소리를 높이는 자와 침묵을 강요당하는 자. 우리는 이런 단순한 대립 구도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나름의 정의를 논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엘리자베타 프리셈(Elizaveta Friesem)은 LSE Blogs와 Aeon 등 주요 학술 플랫폼에 기고한 에세이를 통해 이러한 접근법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불평등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사고방식이 정작 문제의 복잡성을 가리는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프리셈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기존 마르크스주의적 사회 분석이 억압과 불평등의 구조를 드러내는 데에 크게 기여했음을 긍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관점이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라는 점, 즉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사회를 단순히 나누는 방식이 현대의 복잡한 갈등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현실은 단순히 선악의 구도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여러 정체성과 역할을 교차적으로 가지며, 누구도 완전히 억압자나 피억압자로 정의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의 불평등과 고통은 전통적인 구조적 지배에 의해서만 발생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적 실패나 예상치 못한 사회적 결과들이 우리의 일상에 더 깊은 영향을 미칠 때가 많습니다. 프리셈의 주장은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의 패러다임 전환 개념에 기반합니다. 쿤은 과학 발전이 점진적 축적이 아니라 근본적 사고 틀의 전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리셈은 이를 사회 분석에 적용하여, 마르크스주의가 한 시대의 지배적 패러다임으로서 구조적 불의를 가시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합니다. 그는 "사회생활은 이분법적 모델이 포착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사람들은 혼합되고 변화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해악은 의도적인 지배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시스템은 아무도 의도하지 않거나 통제하지 않는 결과를 종종 초래한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직장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단순히 '상사가 직원들을 억압한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데 그칠 수 있을까요? 프리셈은 이러한 단순화를 넘어서, 권력 구조와 개인적 의도, 사회적 기대가 어떻게 엮여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 내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개인적 상황에서 가지는 힘과 약점은 맥락이 바뀔 때마다 변합니다. 예를 들어, 회사 내에서는 권력을 가진 상사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이 가정에서는 전혀 다른 역할, 즉 무력한 위치에 있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권력과 무력감이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관계적이고 맥락적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복합성은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모두를 곤란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전 세계가 겪었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마스크 부족, 백신 접종 우선순위 문제, 재택근무와 관련된 논란까지, 이러한 문제들은 간단히 누가 억압하고 누가 억압받는지 따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팬데믹 초기 마스크 공급 부족은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에서 비롯되었으며,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의도적 지배보다는 시스템의 예측 불가능한 실패가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 문제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일수록, 해결을 위한 접근법 또한 더욱 유연하고 창의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갈등의 다층적 성격, 복합성 이론으로 본 현대 사회 프리셈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이론의 한계를 넘는 '복합성 이론(Complexity Theory)'을 제안합니다. 복합성 이론은 1960년대 이후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서 발전해온 학문적 접근법으로, 시스템이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다층적 상호작용을 통해 작동한다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과 에드가 모랭(Edgar Morin) 등이 이 분야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복합성 이론은 갈등이 단일한 원인이나 구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 형성된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선택과 시스템의 제약, 의도와 비의도적 결과 등 조합이 모두 녹아들어 있습니다. 즉,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도 완벽히 '피해자'나 '가해자'로 규정될 수 없고, 모든 관계는 역동적이고 변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교훈을 던집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사안 중 하나는 세대 간 갈등입니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 구도가 대표적입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24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3%가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으며, 이는 2020년 조사(54.7%)보다 13.6%포인트 상승한 수치입니다. 흔히 우리는 이를 두 세대 간 권리 다툼으로 단순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기성세대도 오랜 시간 동안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투쟁 속에서 만들어진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이들 역시 구조조정과 실업의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에 따르면 1998년 실업률은 7.0%까지 치솟았으며, 당시 40대였던 현재의 60대 세대는 이 충격을 직접 겪었습니다. 동시에 MZ세대 또한 새로운 구조적 제약에 시달리는 처지입니다. 통계청의 2025년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청년층 고용률은 46.8%로 OECD 평균(54.3%)을 크게 밑돕니다. 또한 서울의 평균 주택가격 대비 소득 배율(PIR)은 2024년 기준 12.5배에 달해, 젊은 세대의 주거 문제는 기성세대가 경험했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한쪽을 피해자, 다른 쪽을 가해자로 정의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는 프리셈의 지적이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한국 사회의 세대 갈등은 단순히 자원 배분의 문제가 아니라, 각 세대가 경험한 사회경제적 맥락의 차이에서 비롯된 인식의 괴리"라고 분석합니다. 그는 "이분법적 접근으로는 이러한 복합적 갈등을 해결할 수 없으며, 각 세대가 처한 구조적 제약을 동시에 이해하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프리셈이 제안하는 복합성 이론과 정확히 일치하는 시각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복합적인 시각으로 갈등을 바라보는 것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존재합니다. "결국 모든 갈등을 너무 복합적이라고 치부한다면, 책임과 해결책은 사라지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잇따릅니다. 특히 구조적 불평등의 피해자들은 이러한 접근이 가해자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비판이론가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복합성 담론이 "신자유주의적 책임 회피의 수사"로 전락할 위험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갈등, 새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책임과 복합성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프리셈은 복합성을 이해한다고 해서 누군가의 잘못이나 책임을 희석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명확히 합니다. 오히려 다양한 관점을 고려함으로써 더 정교하고 실효성 있는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다룰 때 가해자의 개인적 책임을 묻는 동시에, 그러한 행동을 묵인하거나 조장한 조직 문화, 신고 체계의 부재, 성평등 교육의 미흡함 등을 함께 개선해야 비로소 근본적 변화가 가능합니다. 이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층위를 다층적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프리셈의 접근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젠더 갈등, 지역 갈등, 이념 갈등 등을 분석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고 평가합니다. 그는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증폭되는 극단적 대립 구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각 행위자의 위치성과 맥락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입니다. 실제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5년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뉴스 이용자의 73.2%가 "댓글과 SNS에서 극단적 의견 대립을 자주 목격한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사회 갈등의 이분법적 프레이밍이 디지털 공간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프리셈의 주장은 단순히 이론적 논의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갈등, 우리가 느끼는 분노와 좌절, 이것들이 어디에서 기인하며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를 보다 면밀히 분석하자는 요청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갈등과 대립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다각도로 파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존의 틀을 넘어서 갈등의 근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유럽의 경험도 참고할 만합니다. 독일의 경우 동서독 통합 과정에서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내적 통합(innere Einheit)' 개념을 도입하여, 구조적 차이와 문화적 이질감을 동시에 다루는 복합적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베를린 사회과학연구센터(WZB)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통일 30년이 지난 후에도 동서독 간 인식 차이가 존재하지만, 이를 단순한 승자-패자 구도가 아닌 상호 학습의 과정으로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갈등의 해답을 단순한 선악 구도에서만 찾으려 한다면 오히려 해법은 멀어질 수 있습니다. 복잡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시각으로 이를 해결할지, 이제는 우리 사회 모두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프리셈이 제시한 복합성 이론은 완벽한 해법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갇혀 있던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정교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출발점을 제공합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다층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데 그치지 않고, 왜 그러한 갈등이 발생했으며 어떤 구조적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지적 성숙함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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